고린도후서 5:14-21

서 경 철 목사
(서울홍성교회 담임)
1948년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두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용서와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릴 때 사랑의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란 하나님과 이웃을 화목하게 만드는 섬김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랑의 전도자로 만들어갈까요?

1. ‘자기 중심성’으로부터의 죽음
자기 중심성이란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높이는 죄의 본성을 뜻합니다. 이웃은 안중에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도 없습니다. 자신의 말만 하고 자기 생각을 절대화시킵니다. 자기 중심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죽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때에 우리는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릴 때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 영혼의 필요가 무엇인지 묻기 시작합니다. 그가 어떠한 아픔과 눈물이 있는지를 듣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시작입니다.

2. ‘기쁜 소식’에 대한 책임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에서 자유를 받았고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위로와 기쁨을 누리며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 기쁨과 행복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고통 하는 나의 이웃을 위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세상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고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화목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화목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면 지극히 이기적인 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거룩한 책임을 망각한 것입니다.

3. ‘변화된 모습’을 미리 바라보는 비전
그리스도는 우리를 바라보시되, 우리의 변화될 모습을 미리 바라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비전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도 이웃의 변화된 모습을 미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가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손양원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도 마침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부르심과 사명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장면을 미리 그리십시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자기 죄와 허물로 인해 두려움과 죄책감의 감옥에 살아갑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믿지도 않은 채 자신은 선량하게 살아간다고 착각합니다.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이 가을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기쁨과 책임감으로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상담문의  :  ☎ 391-4567>

저작권자 © 은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