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구청장’, ‘발바리 구청장’, ‘뚜벅이 구청장’, ‘오뚜기 구청장’…

여성 문제와 관련한 시대적 가치는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성 평등과 성인지감수성, 여성의 안전과 복지, 사회적 참여를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은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아젠다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 관련 정책은 개발하고 개선할 점이 많다. 현장의 유리천장도 여전히 높다. 여성의 리더십, 여성을 위한 명실상부한 행정과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한 시대다. 여성 전문 매체인 우먼타임스는 사회의 다양한 기관과 조직의 여성 리더들을 인터뷰해 여성의 권익과 복지,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전한다. -편집자 주-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한테 직원들과 지역 구민이 지어준 별명이다. 제대로 밥 먹을 틈도 없이 일만 하느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서 라면 구청장인 줄 알았다.

지역을 돌아다니고 주민을 만날 때마다 저는 늘 내가 만약 OO라면?’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 엄마들을 만나는 자리에선 내가 만약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게 무얼까라고 생각해요.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려고 긴 줄을 선 주민들을 보면 내가 저기에 서 있다면 뭐가 불편할까라고 스스로 반문하는 식이죠. 그래서 붙은 별명이 라면 구청장입니다.”

발바리’ ‘뚜벅이구청장은 하도 발품을 많이 팔아서 붙은 별명이다. 구의원 2, 시의원 2, 구청장까지 18년 동안 은평구 구석구석, 골목골목까지 돌아다녀서 멀리서도 알아보고 인사하는 주민이 많다. ‘오뚜기구청장은 한번 목표를 세우면 좌절을 맛보더라도 결국 소통하고 설득해서 성과를 내고야 마는 끈기에서 나온 별명이다.

지난 124일 찾은 구청장 집무실은 여느 구청장실보다 작고 단촐했다. 구정 활동을 담은 수많은 사진을 모아 인물 사진으로 모자이크한 판넬 아래, 초등학교 학생들이 써 보낸 감사의 손편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매점이나 열람실, 휴게실 등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서 개조하도록 지원하는 내가 그린 공감학교 사업덕분에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에 멋진 쉼터가 만들어져서 고맙다는 편지였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집무실에 소중하게 간직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감사편지를 보면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내가 그린 공감학교 사업지원으로 멋진 학교 공간을 갖게 된 학생들이 보낸 편지다. (은평구 제공)
김미경(57) 은평구청장은 김수영 양천구청장과 함께 서울에서 딱 두 명뿐인 여성 구청장이다. 부구청장까지 여성인데 이런 라인업은 전국 자치단체에서 유일하다.

여성 지자체장이라고 해서 여성 정책에 더 관심이 많은가, 부터 물었다. ‘예스를 기대했지만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구청장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정책 개발에 더 노력을 쏟는 게 아닌가 궁금해하는 주민들이 있어요. 남자 구청장이라 해서 남자에 더 관심이 많은 걸까요? 자치단체장은 성별 차별 없이 누구나 평등한 지역 환경을 조성하고 모든 주민에게 골고루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평구는 남녀는 물론 아동, 청소년, 장애인, 어르신 등 누구도 소외받지 않도록 구정을 운영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성평등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지난해에 정부로부터 여성친화도시 2단계 지정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여성 리더십이란 게 따로 있는 거냐, 있다면 어떤 것인가 물었다.

여성 리더십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별도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리더의 덕목은 균형을 잃지 않을까요? 흔히 남성 리더는 추진력이 있고, 여성 리더는 섬세하다고 하는데 그건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적 성향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조직을 이끄는 덕목에서는 남녀 리더 간 차이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장은 주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지 정확히 파악해 명확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성과를 이뤄내는 추진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반 리더십이나 여성 리더십이나 결국은 주민 수요 충족이라는 목표가 같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김 구청장은 하나를 덧붙였다.

하지만 여성의 관점과 경험이 그동안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 수립 과정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사혁신팀장을 여성으로 임명했고 주요 보직에도 여성을 많이 배치했어요. 그걸 역차별이라고 한다면 곤란하죠.”

그런 여성적 관점과 경험이 바탕이 된 은평구만의 사업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아이맘 택시라는 걸 들어봤는지 모르겠네요. 돈 내고 타는 택시가 아닙니다. 아이 낳아 키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 사업입니다. 지난해 대한민국혁신박람회에서 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됐어요. 그후 광진구, 강동구, 노원구 등 여러 지자체가 벤치마킹해 비슷한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용해본 많은 엄마들이 감동적이라고 말해줘서 저도 무척 기쁩니다.”

아이맘 택시는 임산부나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병원에 갈 때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김 구청장의 ‘~라면적 발상에서 시작됐다. 20208월 대형승합차량 4대로 시작했는데 주민의 폭발적 성원으로 8대로 늘렸다.

코로나 시대에도 딱 맞는 주민편의 사업이다. 매일 소독을 철저히 하고 큰 유모차를 실을 수 있게 차량 내부도 개조했다. 유아용 카시트와 공기청정기, 장난감 등을 갖추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내부를 꾸몄다. 무엇보다 교육받은 전용 운전기사가 배치돼 친절하고 안전하다. 여성 기사도 있다. 게다가 무료다. 이용 신청도 앱으로 하니 편리하다. 24개월 이하 영유아를 둔 가정이 12회 연 10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앱 가입자만 약 4,000, 지금까지 이용 건수는 13,300건에 이른다. 관내 밖의 병원까지도 태워다주고 귀가까지 시켜주니 주민 여론조사에서 거의 100% 만족도를 얻었다. “은평구에 사는 게 자랑스럽다”, “남편이 태워다 주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낫다”, “이런 거야말로 진짜 피부에 와닿는 정책 중 정책이다라는 반응을 얻었다.


전국 지자체 혁신 사업의 롤모델이 된 아이맘 택시발대식. 20208월 대형승합차 4대로 출발해 8대가 운행 중이다. 임산부나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가 병원에 갈 때 무료로 얼마든지 불러 이용할 수 있다. (은평구 제공)
은평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미경 구청장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구의원에 출마한 적이 있는 아버지를 돕던 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2003년 은평구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이어 시의회 의원이 됐고 여성 최초로 도시계획관리위원장까지 역임했다.

정치를 꿈꾸는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정치를 그냥 하려면 안됩니다. 기초부터 다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을 돌아다니고 알아야 합니다. 주민자치위원이든 뭐든 작은 자리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발전해가야 합니다. 지역 속에서 열심히 하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경험을 쌓은 후에 출마해야 합니다. 운 좋게 발탁되는 것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이 쌓이고 정치생명도 길어질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구청장은 2018년 취임 후 재개발이나 교통,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힘을 쏟았지만 특히 주민 평생교육, 복지, 환경 분야 등에서 괄목할 성과를 냈다.

주민주도형 재활용품 배출 정책인 그린모아모아 사업, 지상에 생활체육시설을 갖춘 지하의 대규모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진관동) 설립 추진이 돋보인다. 여성의 취업 및 창업 교육도 기존의 전통적 여성 장르에서 벗어나 AI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30개에 달하는 우리동네배움터는 주민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해 아시아태평양 학습도시 연맹으로부터 우수 학습도시로 선정됐다.

여타 지자체보다 훨씬 많은 8개의 구립공공도서관과 혁신적 운영방식은 전국 공공도서관 평가에서 2년 연속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복지 대상자가 많은 은평구는 복지 분야의 노하우가 쌓여 보건복지부의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 제공분야에서 4년 연속 전국 최다 수상을 했다. 서울시일자리만들기 최초 7년 연속 우수 지자체로도 뽑혔다.

은평구는 정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주민의 25%(12만 명)가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있고 14년 연속 적십자회비 모금 서울시 1위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서울 서북부의 은평구는 낙후된 지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지만, 은평구의 변모와 미래의 청사진은 은평구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놓을 게 분명하다.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주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 살기 좋은 곳이 되는지 은평구의 실험이 관심을 끌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은평구의 미래는 문화다. 불광천과 북한산을 낀 은평구는 곳곳에 문화 관광자원이 많고 그 잠재력이 풍부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곧 모습을 드러낼 은평문화관광벨트로수색 역세권부터 시작해 불광천을 따라 북한산 자락 진관동까지 이어진다.

수색역에는 롯데민자역사 복합개발 및 컨벤션 등 업무문화단지가 조성된다. 삼표에너지 본사 고층에 전망대가 설치돼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다문화박물관이 들어선다. 이어 응암역 주변 불광천에 방송문화종합센터가 조성돼 수상무대 공연장 등이 들어선다. 서북부 유일의 대학병원인 은평성모병원은 이미 개원했다. 빙상장과 인라인경기장도 유치했다. 숭실고 근처에 조성된 수도권 최대 편백나무숲은 벌써 입소문을 탄 관광명소가 됐다.

가장 두드러진 문화자원은 2024년 북한산 자락 진관동 기자촌에서 개관할 국립한국문학관이다. 많은 전국 지자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후보지로 선정됐다. 은평구는 정지용 시인, 이호철 최인훈 작가 등 많은 문인을 배출한 고장이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문학상도 돋보이는데, 총상금 7,000만 원의 이호철 통일로문학상은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한국문학관 인근에는 천년고찰 진관사, 삼천사, 한국고전번역원, 사비나미술관, 은평한옥마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셋이서 문학관(천상병, 이외수, 중광스님), 삼각산금암미술관 등이 있고 앞으로 예술인마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색역에서부터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 불광천을 따라 북한산 코밑 한국문학관까지 오는 길은 서울에서도 드문 문화향유의 길이 될 전망이다. 문화관광 벨트의 접근성도 좋아진다. GTX A노선, 서부경전철, 신분당선 서북부선 연장 등이 계획돼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답게 김 구청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도시와 문화는 서로 순환하는 불가분 관계입니다. 현대의 도시는 경제적 가치 중심의 외형적 도시에서 사람과 문화로 중심적 가치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활성화는 곧 도시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또다시 문화의 활성화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로 확장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겁니다. 지역문화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개발 관리 연결해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컬처노믹스가 미래의 도시가 살 길입니다.”

<기사제공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저작권자 © 은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