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신 / 문학박사              본지 컬럼니스트              함께가는 길 재가노인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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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지방선거 당일, 유권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나타나지 않았다. 투표시간을 연장해가며 겨우 선거를 마쳤지만 유효 투표율은 25%에도 못 미치는 70% 이상이 백지 투표였다.

그러자 당국은 일주일 후에 재선거를 치르지만 결과는 더욱 황당하고 놀랍게도 백지 투표율이 83%까지 치솟았다. 시민들은 우파, 좌파, 중도든 그 어떤 정파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당국이 가장 갑갑한 것은 그 배경도, 시민들의 연대도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리에 비밀정보요원도 풀어놓았고, 각 부처가 진상파악에 나섰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일 뿐이다.

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도를 옮기고, 전철역 폭발사건을 일으키고, 심지어 어처구니 없는 여인을 배후 조종자로 몰아 상황의 반전을 시도해보지만 시민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관심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렇다고 사재기도 없고, 폭동도 없으며 겉으로는 평화가 유지되는 듯한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현대사회의 거대한 우화를 담은 신체적 전염병눈먼자들의 도시에 이은 사회적 전염병을 다룬 눈뜬자들의 도시의 내용이다.

작가는 기득권을 취한 혁명가들과 유권자를 통제하려는 위정자들에 대한 응징을 시민들의 백지투표로 형상화하여 백사병이 퍼진 도시를 통해 현실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바탕에 깔아 놓았다.

그러면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신념과 관행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자기 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라고 썼다.

비유와 풍자가 분명 초현실적 소재를 다룬 오래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처해있는 코로나 19’와 외면받는 정치적 현실에 심심한 화두를 던진다.

2020815, 광복 75주년을 맞이했다. 광복절의 '광복'은 일제강점기 동안의 불운을 극복하고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우리민족의 해방과 국가의 독립을 의미한다.

아마도 우리민족의 광복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노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독립을 향한 강한 열망과 의지를 세계에 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평화와 번영은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광복 75주년 맞은 현실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한 서민 경제의 파탄, 설상가상으로 집중호우로 인한 귀중한 인명과 재산 피해에도 불구하고, 공익과 사욕을 구분 못하는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위선은 총체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근본인 인본주의적 진실과 참된 가치, 사랑과 연대를 상실하고 표풀리즘에 젖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며, 아이러니하게도 사마라구의 소설 눈뜬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노고를 바탕으로 숱한 외세의 압력과 국난의 위기속에서도 온 국민이 하나되어 눈부신 경제선진국으로 당당히 도약하였다.

따라서 순국선열들의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획일화된 낡은 정치적 신념과 부도덕한 관행을 새시대에 맞게 단호히 개조하여 다양한 시대정신으로 국가를 재건해야한다. 2빛을 되찾는대한민국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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