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5

우리는 산상수훈의 팔복안에서 예수님의 성품과 삶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하셨고 죄인들을 향해 애통이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셨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팔복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팔복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 예수님의 축복을 살펴봅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감당할 수 없는 복은 무엇입니까?
1. 화해자로 살아가는 보람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이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없어 평화를 누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 갈들이 없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이세상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셨지만 벌거벗긴 채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이셨지만 채찍질과 온갖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립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압제를 보고 고통하십니다.
우리들은 그 예수님을 모셨기 에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평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통일을 위해 구하십시오.
둘로 쪼개진 우리 민족은 예수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닮아갑니다.
2.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험을 즐깁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우리가 세상 가치관을 내려놓고 성경적 가치관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박해가 시작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니”
박해는 말로 인한 무시, 조롱, 따돌림으로 옵니다.
더 나아가 박해는 신체적 상해나 구금, 경제적 박탈 심지어 순교로까지 이어집니다. 박해는 예수 믿는 성도들이 진짜라는 표식입니다.
민주화 사회에서 우리는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는지를 자문할 수 있습니다. 혹은 거룩한 낭비를 기뻐하고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성결한 비효율을 추구하는 지를 돌아보십시오. 블레싱코리아때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감격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립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늘의 상이란 주님 자신과의 교제가 더욱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더욱 알아가게 되고 주님과의 사귐이 더욱 깊어집니다.
주님 대문에 핍박을 받을 때 주님에게서 기쁨을 더욱 경험합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볼 때 주님의 채우심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주님 때문에 내려놓고 주님 때문에 인내할 때 주님의 위로와 지혜가 더욱 충만해 집니다.
죽음의 순간에동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하늘의 기쁨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비밀은 나의 고난을 넘어 그시스도의 고난을 붙잡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인생 광야에서 건강을 잃고 사업이 흔들려도 예수님만을 나의 복으로 여기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감당할 수 없는 축복으로 인생의 폭염을 시원하게 이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상담문의  :  ☎ 391-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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