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 원장의 내자녀 교육의 길잡이


세상이 너무 빨리 변화다 보니 혼자 살기도 숨이 가쁜 시대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시대에 맞는 삶이냐에 대한 뚜렷한 확신도 갖지 못한 채 우리는 엉겹결에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들을 낳고 키워야 하는 엄청남 짐을 떠맡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시대를 힘차게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아들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온갖 종류의 교육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길을 잡아주는 교육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우리는 부모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며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아이들의 눈망울 앞에서 지레 겁부터 먹거나 아무렇게나 키우다 보면, 우왕좌왕,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제 겨우 부모 노릇에 대한 감이 잡혔다 싶을 즈음이면 아이들의 벌써 우리의 손을 벗어나 버립니다.

그렇게 커 버린 아이들이 어쩐지 영 우리 맘에 들지 않아 우리는‘자식만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며 부모 노릇의 버거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아이들 역시 서툰 부모들의 자식 노릇에 질렸다는 듯이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급변하는 사회를 함께 헤쳐 나가면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할 따뜻한 관계는 어느새 서로 상처를 주는 가장 냉랭한 관계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20세기말과 21세기초에 걸쳐 몇 십년동안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풀이 하듯 아이들을 키웠고 이제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것 같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의 바램은 ‘우리가 가난 때문에 못 한 것을 너희들이 대신 해 주렴!’ 나의 부모님들은 ‘우리들의 큰 한은 공부요. 출세다’였습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바램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 출세하는 것, 그것만이 아이를 키우는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방법이 달라지기는 했을지 모르나 지금의 부모들도 우리 아이들이 좋은 대학 나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무섭게 변해서 아이들은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어긋남을 세대갈등이라고 얼버무림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쳐내고 있습니다.

부모중심의 아이 키우기는 아이와의 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아이의 삶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자랐던 세상은 물론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도 많이 다른 세상을 살아 갈 것이라고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이가 뒷걸음질하기를 바라지 않을 텐데도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구시대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지금 20대밖에 안 된 젊은이들 중에도 인생관이나 직업관 그리고 이성관에서 부모세대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참 놀랍지요.

지금 열린 세대에 닫힌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은 닫힌 세대에서 열린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같을 것입니다. 착하지만 꽉막힌 남자들.... 새로운 시대의 물결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우리의 아들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의 시대가 원하는 아들로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21세기의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젊은 부모들은 아이 키우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겹고 어렵다고 푸념을 합니다. 무한경쟁의 사회, 정보화, 세계화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무언가 획기적으로 다른 육아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짓눌리면서 윗세대와는 또 다른 물량주의에 사로 잡히고 있는것 같습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성공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모들은 늘고 있지만 대신 남보다 빨리 아이의 적성을 찾아내어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조급증은 또 다시 부모중심의 아이 키우기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한때 못 말리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남자아이들이 교실에 넘쳐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딸을 선호하는 시대다 보니 그나마 교실에서의 성비가 같거나 역전되었지만 아들 가진 부모들은 웬지 모를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키우는 부모는 ‘꼭 집어 이거다’라고 밑줄 쫙 그어주는 아들 키우는 비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조급증이야 말로 육아에 있어서 실패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입니다. 변화의 파고가 높으면 높을수록 여유를 갖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사내아이란 가연 어떤 존재이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 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아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부모, 나이에 따라 적절한 울타리를 쳐 주는 부모, 겉으로 들어난 반항 뒤에 숨은 긍정적 의도를 찾을 줄 아는 부모, 이성만 아니라 감성도 키워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차차 이런 내용을 가지고 알아보고자 합니다.

시대는 이제 여성에게 그러하듯 남성에게도 강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할 것을 원하고 있고 부모 또한 강하면서도 부드러움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 것입니다. 결국 아들을 키우면서 부모도 함께 커야 한다는 주문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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